[안현실 칼럼] 한·일 新협력론

입력 2019-11-21 17:37   수정 2019-11-22 00:13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으로 수출이 타격을 입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 압력에 직면하기는 한국과 일본이 다를 게 없다. 미국의 방위비 협상이 보여주듯 안보 부담이 한·일 양국에 증대되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양국은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도 안고 있다. 같은 시련에 직면한 한·일이 정상 관계였다면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미· 중 분쟁을 돌파할 지혜를 짜내느라 분주했을지 모른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일본의 ‘판정패’라는 중간평가를 내놨지만, 수긍할 한국 기업은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국산화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일본 기업의 입장은 다른 듯하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국산화 움직임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분명한 사실은 일본의 수출규제 여파로 양국 모두 상대국에 대한 수출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역설적으로 한·일 경제가 구조적 공생관계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를 일본의 수출규제와 연계시킨 것도, 제한적이지만 일본이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의 한국 수출길을 모두 연 것도 얽히고설킨 양국의 경제 현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한·일 기업들이 불확실성이 거의 없다고 믿어온 게 양국의 공급망이다. 한국에서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을 말하지만, 정치 변수만 없다면 양국은 더없이 좋은 분업 파트너라는 얘기다. 가뜩이나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센 상황에서 최근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비용 발생이 양국 기업에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정학적인 이해관계 관점에서 한·일 양국이 함께 대응해야 할 국가는 따로 있다. 바로 중국이다. 한국의 대외 의존도에서 중국은 일본보다 더하다.

일본 역시 중국 의존도가 커진 것은 매한가지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험한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물론이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서라도 대중(對中) 의존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할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미·중 충돌 장기화에 대비해 중국이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도 한·일 양국은 공동의 이해영역을 갖고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에서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으로 가고 있고, 중국은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다. ‘디지털 철의 장막’ 같은 신(新)블록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형국이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로서는 생존을 위한 핵심기술 등 ‘전략적 요충지(choke point)’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미·중으로 쏠리고 있는 혁신 클러스터에 대응하려면 한·일 정부는 ‘국가 단위’ 산업정책을 뛰어넘을 각오도 해야 할 판이다.

한·일 정부에 앞서 양국 기업들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협력에 이어 한국 검색시장 1위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일본 소프트뱅크 손자회사로 일본 최대 검색엔진인 야후의 경영 통합이 그렇다. 양국 기업들이 AI 등에서 손잡고 동남아로, 유럽으로 뻗어 나가면 미·중의 거대 정보기술(IT) 업체들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일 자동차 회사들이 힘을 합치는 ‘수소경제 동맹’도 꿈꿀 수 있다.

한·일 기업 간 협력이 늘어날수록 양국 모두의 과제인 노동시장 개혁, 규제 혁파 등 제도 혁신에 속도를 내는 데도 유리할 것이다. 한·일 갈등을 끝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더 큰 국익’을 위한 양국 정부의 결단만 남았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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